“선생님! 어려워요. 못 하겠어요.” 오늘도 수학 문제 거부 운동을 하는 지환이. 나는 “이건 지환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 풀었던 문제를 보고 다시 풀어보자”라며 격려했다. 그러자 지환이는 이번엔 “우석이가 방해해서 문제 못 풀겠어요!”라며 거부한다.지적장애 3급인 지환이는 받아올림이 있는 두 자릿수 덧셈을 공부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쉬운 문제만 풀려 하고, 어려워 보이는 과제는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다. 받아쓰기나 형성평가의 점수가 낮게 나오면 “나는 바보 멍청이예요!”라며 떼를 쓰고 울기 시작한다. 감정
“선생님, 우리 진혁이는 장애아동인 것이 거의 표가 안 나요. 일과 중에는 통합학급에서만 생활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방과 후에 선생님께서 진혁이가 어려워하는 수학과목 좀 개별 지도해주시면 안 될까요?”지난 4월, 2학년인 지적장애 3급 진혁이가 전학을 왔다. 진혁이 어머니는 등교 첫날 나에게 전화로 부탁을 하셨다. 진혁이는 통합학급에서 반 친구들과의 학습이 가능할 만큼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소통도 원활했다. 수업 중에 주의가 산만하고 떠들어서 통합학급 담임교사의 지적을 받곤 했지만 2학년 남자아이들에겐 흔히 있는 모습이
“선생님! 우석이가 없어졌어요. 바지 아래를 잡으며 밖을 가리켜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의미로 알고 다녀오라고 했거든요. 20분째 돌아오지 않아요. 화장실에도 없고요.”우석이 담임선생님이 수업 중에 다급히 달려오셨다. 특수학급 교사인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걱정 마세요. 근처에 있을 거예요. 잠깐 한눈팔다가 돌아올 거예요.”교실에서 갑자기 사라진 우석이. 다 이유가 있다. 3학년 우석이는 언어·뇌병변 2급의 선천적 장애아동이다. 입학 당시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렵고, 인지능력은 만 3세 이하의 수준이어서 통합교육을 하기에는
‘우리 지역에 몰아넣는 야비한 특수학교 설립, 절대 반대.’우리 학교 교문 앞에는 ‘특수학교 설립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 학교는 내년에 대대적인 변동을 앞두고 있다.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단지 내 49개 학급의 대형학교 형태로 바뀌게 된다. 지금의 초등학교 자리에는 특수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 역시 님비현상으로 골이 깊다.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장애우 학부모가 무릎까지 꿇은 서울 강서구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지만, 우리 동네엔 안
“선생님! 제가 3학년이 되면 선생님께서 우리 동생을 좀 봐줘야 할지도 몰라요. 몸이 조금 아픈데, 선생님이시라면 우리 동생 환희를 잘 봐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작년 이맘때, 2학년 운희가 나를 찾아와서 한 말이다. 늘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다 운동도 잘해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운희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지난 1월엔 운희 어머님이 따로 뵙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렇게 해서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운희 동생 환희를 만나게 됐다. 자폐가 있는 환희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부모님은 환희를 특수학교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우석이가 반 친구들과 급식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집에서는 안 먹으려던 김치며 브로콜리, 버섯도 잘 먹더군요. 우석이가 많이 성장했네요. 감사합니다.”열 살 우석이는 언어·뇌병변 2급의 선천적 장애아동이다. 입학 당시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렵고, 유치원생들보다 작고 왜소한 체구로 친구들이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우석이의 인지능력은 만 3세 이하의 수준이었다. 통합교육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문제행동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보호관심대상 1호 학생이었다. 점심시
5학년생 동욱(가명)이는 6세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또래에 비해 산만하고 주의집중력이 짧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서 받은 진단이었다. 지금 동욱이는 6년째 약을 복용 중이다. 동욱이의 학습능력은 우수한 편이지만 수업 중에 멍때리거나 주어진 과제를 하지 않는 등 수업 태도가 좋지 않고, 또래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며 잠을 못 잔 것처럼 늘 피곤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성격이 예민해 사소한 일도 친구들과 곧잘 다투고 급식시간에는 밥을 안 먹으려고 몰래 바닥에 버리다가 혼나기 일쑤다. 친구들
“은진이가 아직 한글을 못 뗐어요. 말은 꽤 잘해서 초등학교 입학 때쯤 어련히 알아서 글을 읽으려니 했는데…. 친구들이 놀리거나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필리핀에서 온 은진이 어머니 걱정이 한가득이다. 은진이는 다문화가정의 밝고 귀여운 여학생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한글이 서투르고 학교생활 적응이 걱정되는 은진이를 위해 담임선생님 부탁으로 도움반(특수학급)에서 한글 떼는 학습을 시키기로 했다.다문화가정 자녀뿐 아니라 장애아이들이나 지적발달이 조금 늦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름의 목표가
“요즘 저학년 학생들이 신발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신발장의 신발이 자꾸 없어지거나 뒤섞여 있는 일이 많아요. 심지어 교사용 신발장까지도요. 저도 실내화를 두 번 분실했어요. 유치원 아이 신발이 교사용 신발장에 와 있는가 하면 체육관 신발장에 가 있기도 해요.”교직원 회의시간,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에 다른 교사들의 제보가 빗발쳤다. 2학년 변 교사의 신발은 교장선생님 신발장에서 찾았고, 1학년 김 교사는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갈 때 제자리에 있지 않은 신발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다고 하소연했다.나는 ‘아차!’ 싶었다. 최근
“영주가 이번에는 교장실 냉장고까지 열어서 드링크 음료와 교장선생님 약을 먹었어요.”“학교 냉장고는 영주가 다 꿰고 있네요. 모든 냉장고에 열쇠를 달아야겠어요.”교사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4학년 영주는 ‘프래더윌리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지녔다. 넘치는 식탐을 주체 못 해 교무실이며 연구실 곳곳의 음식을 찾아 먹고 급식시간에는 친구들 반찬을 몰래 먹는다. 현장체험학습 때에는 냉면에 넣는 설탕을 전부 퍼먹기도 하고 카페에 있는 시럽을 종이컵에 따라 먹는 것을 제지해야 했다.프래더윌리증후군(Prader-Willi Syndrom)은 염
지난 3월 민우의 어머니는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민우를 2년째 지켜보니 민우가 또래에 비해 학습적인 면에서 많이 지체돼 있어요. 받침 있는 글자를 잘 쓰거나 읽지 못해 학습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힘들어하고요. 민우를 특수학급에 입급시키면 어떨까요?”전화를 받은 민우의 어머니는 충격이 컸다. 올해로 11세, 칠삭둥이로 태어난 민우는 조금씩 느렸다. 성장과정에서 조금 늦는다고 생각했지만 일반학교 생활은 무리 없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공부보다는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응원해주
아홉 살 민지는 지적장애 1급이다. 대소변을 혼자 못 가리고 소리를 지르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등 발달지연 장애가 있어 1년 입학 연기를 했다. 민지의 부모님 입장에선 ‘1년 후에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민지는 신변자립이나 학습적인 면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민지가 아홉 살이 되자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입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의 선택은 일반초등학교. 민지가 비장애학생들 틈에서 좋은 행동과 모습을 보며 일반인과 같이 오롯이 성장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었다.많은 장애아동의 부모
“아! 오지 마세요! 아파요, 아파요!”병우는 오늘도 교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를 지른다. 지적장애 2급 병우는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남들보다 한 살이 많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온 병우는 예고 없이 발기가 되면 수업 중이든 급식 중이든 하던 일을 내버려두고 고추를 잡고 구석으로 가서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병우 또래의 남자 친구들이나 형들은 병우를 가려주기도 하고 모른 척하며 나름의 배려를 한다. 병우의 행동은 수업시간에도 지장을 주었다. 고민 끝에 보건선생님의 추천으로 영국에서 제작된 성교육 만화를 함께 보게 됐다. 남학생
작년 5월 할러포르덴-스파츠병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현우가 우리 학교에 전학왔다. 특수교사 10년 차인 나조차 처음 들어본 병명이라 전공서적과 인터넷을 뒤적이다 현우의 사연을 전하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현우는 아홉 살 때까지는 또래 친구들처럼 밝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아홉 살 겨울에 접어들 무렵부터 자꾸만 넘어지면서 다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온갖 검사를 받은 끝에 유전병이 발병했다는 걸 알게 됐다. 현우는 마비 증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인지는 가능하다. 무엇보다 외모가 다른 현우
“우철씨가 일은 아주 야무지게 잘해요. 업무 시간에는 문제없어요. 선생님 바람처럼 동료들이 우철씨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휴게시간이 문제예요.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니깐 직장동료들이 우철이를 조금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우철이의 직장상사 말이다. 우철이가 직장에 잘 적응하는지 궁금해서 전화로 물어본 터였다. 자폐2급의 우철이는 어느덧 스물한 살이 되어 지역의 자동차 조립회사에 취업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보다 혼자하는 활동을 좋아했다. 레고블록을
장애아동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비장애학생들과의 통합교육을 통해 보고 배우는 가운데 장애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실제로 특수교육 대상 학생 8만7950명 중 70.5%에 달하는 6만1989명이 통합교육에 배치돼 있다.(교육과학기술부, 2016 특수교육연차보고서)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특수학교로 전학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점점 벌어지는 학습능력 차이, 또래와의 상호작용의 어려움 등이 이유다.지난해 나는 우리 반에 1학년 장애학생 3명을 받아들였다. 도움반에서 분리된 개별화 수
강욱이 어머니가 강욱이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전화를 해오셨다. 강욱이는 지체장애 1급이다. 밀레니엄 베이비인 용띠 강욱이는 지역 병원들의 파업으로 지연출산이 되면서 하반신 마비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지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유치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일반학교를 다녔다. 강욱이 어머니는 강욱이를 특수학교를 보내야 할지, 일반고등학교를 보내야 할지 갈등하고 있었다. 나는 일반고등학교 특수학급 진학을 추천하면서 “강욱이가 중학교에서도 학교생활을 잘 했죠?”라고 물었다. 하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중
여섯 살 두준이는 18개월 때 뇌병변 장애 2급 진단을 받았다. 출산 시 외부 충격을 받아 백색연화증이 생기는 바람에 또래에 비해 걸음이 늦고, 양손의 소근육이 마미됐다. 그러다 올해, 두준이는 장애 재판정을 받아 4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얼핏 보기엔 희소식이지만 두준이 부모님 생각은 다르다. 두준이의 장애 정도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하향 조정된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주민센터 장애복지과에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현재 국가장애등급 판정은 국민연금 장애심사센터에서 한다. 뇌병변 장애 판정은 대개 의사가 수정바델지수(Modified
4학년 우혁이에게 같은 반 친구 준우가 물었다. “지금 시간 있어?” 우혁이는 역시나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응, 나 시계 있어. 새로 샀는데 계산기도 되고 스톱워치도 되고 방수, 알람도 된다.” 이런 예는 숱하다. 교장선생님이 등굣길에 “친구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자 우혁이는 교장선생님께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어른이시니까 학생들에게 높임말을 쓰시면 안 돼요. 그런 것도 모르세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담임선생님이 수학익힘책을 풀고 있으라고 하자, 우혁이는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서 항의했다. “선생님은 수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급은 대개 1층에 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학생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1층 특수학급이 과연 적절할까? 특수학급의 역할은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통합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 교육청마다 차이는 있으나 ‘학습도움반’ ‘리소스룸’ 같은 명칭으로 불린다. 장애학생들은 일반학급에서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다가 지적·신체적 제약으로 일반수업이 어려운 교과시간에는 특수학급으로 이동해 장애와 개인 수준에 맞는 개별화된 특수교육을 받는다. 즉 장애